상담 및 문의 : 02-403-9884
海南(棠岳)金氏 大宗會
해남(당악)김씨 대종회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뿌리탐구
해남당악김씨의 유래
해남당악김씨의 유래

해남당악김씨는 시조이신 인(忍) 으로부터 이어져온 뿌리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해남당악 김씨 후손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시조 인(忍)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아들인 김명종의 제19대손으로 조선 태종조의 원종공신이다. 국조(國初)에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하여 특별히 (佐幕)으로 발탁되어 무안현대곡포(務安縣大谷浦)에 주둔 활약하면서 현 나주군 왕곡면 송죽리 귀업(龜業)에 터를 잡아 일가융성 뿌리를 마련하였다. 본래 경주김씨의 한 갈래에서 나온 해남당악김씨가 해남(海南)을 씨족의 본향(本鄕)으로 한 것이 언제쯤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말(麗末) 인(忍)의 증조(曾祖)이며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한 김남보(金南寶)가 난(亂)을 피하여 해남(海南)에 은거(隱居)한 이후의 일로 밝혀진 바이다.

손자인 종(琮)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정언(正言)벼슬을 하였고 효정(孝禎)은 생원진사양과(生員進仕兩科)에 합격하여 문필(文筆)로서 이름을 펼치었고 사암(思庵) 박순(朴淳) 선조조 영의정의 외조부(外祖父)이다. 두(㪷)는 어른은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고 성균관(成均館)에서 대과공부중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무고(誣告)를 소변(疏辨)하다 여일(如一)치 못하여 동주유생(同州儒生)들과 귀향하여 십일인계(十一人稧)을 만들어 유유자적 하며 이른바 금강십일현(錦江十一賢) 후세교육에 진력(盡力)하였으며 생질(甥侄) 박순(朴淳) 영의정의 천거(薦擧)도 사양하였다.

이와같이 여러 선조(先祖)들이 벌족가문(閥族家門)의 기반(基盤)을 닦았으나 불행하게도 정유재란(丁酉再亂)을 당하여 세거지(世居地)였던 귀업(龜業)이 초토화되고 족보가 요실(堯失)되는 등 멸문(滅門)의 위경(危境)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에 포로(捕虜)로 붙들려 갔던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였던 동추공(同樞公) 준(浚)이 탈출귀환(脫出歸還)하면서 가문이 다시 흥기(興起)할 수 있는 토대(土台)가 마련되었다.

그 후에 인조조(仁祖朝)에서 여절교위(勵節校尉)와 세자익위사( 世子翊衛司)의 세마(洗馬)벼슬을 하였고 풍산사(楓山詞 현재 귀업본동)에 제향(祭享)된 남포공(南圃公) 만영(萬英)이 흩어지고 멸실(滅失)되어버린 사적들을 하나하나 수집하여 한권의 보책(譜冊)으로 엮어놓은 것이 오늘날 해남당악김씨 족보의 근간이 되었다.

☏ 상담 및 문의 02-403-9884
회사명 : 해남(당악)김씨 대종회  
TEL : 02-403-9884   02-420-2675    FAX : 02-406-7664  
Copyrightⓒ by inodea.com All rights reserved.   
Webmaster  Designed by Inodea